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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는 나중에 늙어서 그의 어릴적 시절에 대하여 '진실에 대한 시험(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에 기록하였다. 간디의 아버지는 간디가 학교를 마치기 전에 죽었으며, 그후 간디가 13살이 되던 해 동갑의 카스투르바(Kasturba)라는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1888년 어느 날, 간디는 영국에 가서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떠난다. 간디의 모든 집안 어른들은 그것을 말렸지만, 정작 그 자신의 결심은 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간디는 술, 여자, 고기를 가끔씩 먹고 즐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간디에게 영국에 가 있는 동안 절대 와인과 여자, 고기를 접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간디가 인도를 떠날 때, 그에게는 몇 살 안된 아들 하리랄(Harilal)이 있던 상태였다.
런던에서 간디는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견신론자, 채식주의자, 그리고 당시 영국의 산업 혁명 바람으로 인해 계몽이 되고 있던 다른 모든 계몽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영국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한다고 간디에게 소개하였다. 간디는 힌두교의 정통 신자였지만, 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런던에서 그는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게 소개되어 찾아가서 결의에 차서 목적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이 문장이 조금 이해가 안됨).
이 모든 사건을 뒤로하고, 간디는 마침내 1891년, Inner Temple에서 변호사 시험에 붙게 된다. 그는 변호사 합격 후 영국 런던 고등법원에서 잠깐 일했다. 하지만, 결국 그 해를 못넘기고 인도로 돌아오게 된다.(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간디가 그때 소심한 성격 탓에, 첫 법정에서 패배를 맞보고 실의에 가득 찼다고 전해짐.)
(원문)
Mohandas Karamchand Gandhi was born in the town of Porbander in the state of what is now Gujarat on 2 October 1869. He had his schooling in nearby Rajkot, where his father served as the adviser or prime minister to the local ruler. Though India was then under British rule, over 500 kingdoms, principalities, and states were allowed autonomy in domestic and internal affairs: these were the so-called 'native states'. Rajkot was one such state.
Gandhi later recorded the early years of his life in his extraordinary autobiography, The Story of My Experimentswith Truth. His father died before Gandhi could finish his schooling, and at thirteen he was married to Kasturba [or Kasturbai], who was of the same age as Mohandas himself . In 1888 Gandhi set sail for England, where he had decided to pursue a degree in law. Though his elders objected, Gandhi could not be prevented from leaving; and it is said that his mother, a devout woman, made him promise that he would keep away from wine, women, and meat during his stay abroad. Gandhi left behind his son Harilal, then a few months old.
In London, Gandhi encountered theosophists, vegetarians, and others who were disenchanted not only with industrialism, but with the legacy of Enlightenment thought. They themselves represented the fringe elements of English society. Gandhi was powerfully attracted to them, as he was to the texts of the major religious traditions; and ironically it is in London that he was introduced to the Bhagavad Gita. Here, too, Gandhi showed determination and single-minded pursuit of his purpose, and accomplished his objective of finishing his degree from the Inner Temple. He was called to the bar in 1891, and even enrolled in the High Court of London; but later that year he left for India.
Copyright, Vinay Lal, 2001, 2012
번역 : 김태훈
<관련 시리즈 보기>
마하트마 간디 1 (Mahatma Gandhi)(영어 + 번역) 클릭
마하트마 간디 2 (Mahatma Gandhi)(영어 + 번역) 클릭
마하트마 간디 3 (Mahatma Gandhi)(영어 + 번역) 클릭
마하트마 간디 4 (Mahatma Gandhi)(영어 + 번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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