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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5일 목요일

B.C.322 마우리아 왕조의 등장과 찬드라굽타의 인도 통일(Rise of the Mauryas, Chandragupta)(영어+번역)


기원전 322년,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인도 통일




[기원전 322-298년]


첫 번째 인도 왕국의 탄생

찬드라굽타
찬드라굽타(Chandragupta)는 인도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차나키아(Chanakya)에게 사사를 받았다. 그리고 마가다(Magadha)의 난다(Nanda) 통치자들을 물리치고 그 곳에 마우리아(Mauryan) 제국을 세우게 된다. 차나키아와 찬드라굽타는 빈디야(Vindhya) 숲에서, 난다국의 왕을 물리친 후 만났다고 전해진다.

앞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알렉산더의 침략으로 인해 인도는 중앙집권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찬드라굽타는 마우리아 제국을 세운 후 여러 나라들에게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그는 셀루써스 니카토르(Selucus Nicator)를 물리치고 마케도이나에게 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 북서부 지역을 탈환한다. 그리고 차나키야의 완벽한 조언을 받으면서, 펀잡(Punjab), 카불(Kabul), 칸다하르(Khandahar), 간다라(Gandhara), 그리고 페르시아(Persia) 지방을 손에 넣게 된다. 당시 이 모든 지역들의 지배자는 셀루서스였는데, 결국 셀루서스의 딸은 찬드라굽타와 결혼하게 된다.

다음은 한 인도 역사학자의 말이다.


"셀루서스는 전쟁에서 졌고, 결국 찬드라굽타에게 항복 선언을 했어야 했죠. 그리고 그에게 엄청난 영토 또한 빼았기게 됩니다. 예를 들면 빠로파니사다이(카불지역), 아리아(Herat지역), 아라초시아(Qanadahar지역), 제드로시아(Baluchistan지역) 들이 그가 찬드라굽타에게 빼앗긴 영토들입니다. 그리고 찬드라굽타는 이러한 영토를 얻는 대가로 셀루서스에게 (겨우) 500마리의 코끼리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이 항복 서약은 찬드라굽타와 셀루서스 딸과의 결혼으로 매우 튼튼해집니다. 당시 그리스의 사절단은 파타리푸트라(Pataliputra) 궁전에 찾아오기 시작했죠"

- An Advanced History of India
by RC Majumdar, HC Raychaudhri & Kalinkar Datta


이 조약의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찬드라 굽타의 명성이 서구 세계로 널리 뻗쳐 나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서구열강들은 마우리아 왕조의 위대함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집트와 시리아의 왕들은 마우리아 궁전으로 많은 외교 사절단들을 보내게 된다.

마우리아 왕조의 최대 영토


베일에 쌓인 찬드라굽타의 탄생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탄생에 대해서는 정확히 전해지는 얘기가 없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그가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공작 조련사에게서 길러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며, 그 중 유력한 한 가지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난다(Nanda) 왕자와 무라(Mura)라고 불리우던 다시(Dasi)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찬드라굽타는 크샤트리야스(Kshatriyas)의 마우리아 부족 일원이었기 때문이다.(아마 크샤트리야스가 난다 왕과 연관이 있는것 같다.-번역자 주)


마우리아 왕국의 통치



마우리아 왕조의 번영을
보여주는 정교한 조각상
마우리아 왕국은 인도에서는 처음으로 중앙집권화 된 강력하고 거대한 나라였다. 정부는 매우 효율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수뇌부는 잘 조절된 독재로 이루어지고, 기타 도시와 마을들은 민주주의로 다스려졌다. 파타리푸트라(Pataliputra)에 있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궁정에 머물던 그리스의 사절,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는 마우리아 궁정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Indica'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는 로마와 그리스의 많은 여행자들의 여행담이 실려 있으며, 마가스테네스 자신도 당시 마우리아 도시들이 얼마나 번영했었는지 기술해놓고 있다.
또한 그는 책에서 마우리아 왕조의 농업과 사회 모습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그가 말하길, '마우리아 왕조의 농업은 매우 풍성했으며, 물은 넘쳐났고 땅은 비옥했다.' 고 한다. 또한 그는 '당시 인도인들은 밝고 풍부한 색감의 옷을 입었으며, 자유롭게 장신구와 보석을 착용하고 다녔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사회는 수많은 종교적 지역으로 나눠져 있었고, 많은 외국인이 와서 거주했다고 전해진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빈두사라(Bindusara)가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힌두쿠쉬(Hindukush), 나마다(Narmada), 빈디야스(Vindhyas), 마이소르(Mysore), 비하르(Bihar), 벵갈(Bengal), 오리싸(Orissa), 아쌈(Assam), 발루치스탄(Baluchistan), 그리고 아프가니스탄(Afghanista)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된다.



(원문)
322 BC: Chandragupta Maurya captures Magadha


Establishes First Indian Empire


[322-298 BC]
Chandragupta, with the help Chanakya (Kautilya), who is also known as the Indian Machiavelli, destroyed the Nanda rulers of Magadha and established the Mauryan empire. It is said that Chanakya met Chandragupta in the Vindhya forest, after being insulted by the Nanda king.


Alexander's invasion prompted Indians to develop a centralised state. Chandragupta declared war and defeated Selucus Nicator, the Macedonian ruler of the Northwestern territories captured by Alexander the Great.
Along with the the astute advice of Chanakya, Chandragupta also seized Punjab, Kabul, Khandahar, Gandhara and Persia from Seluces. Seluces' daughter was married to Chandragupta.

"Selucus failed and had to conclude a treaty with Chandragupta by which he surrendered a large territory including, in the opinion of certain writers, the satrapies of Paropanisadai (Kabul), Aria (Herat), Arachosia (Qanadahar) and Gedrosia (Baluchistan), in return for 500 elephants. The treaty was probably cemented by a marriage contract. A Greek envoy was accredited to the Court of Pataliputra."

- An Advanced History of India
by RC Majumdar, HC Raychaudhri & Kalinkar Datta


The most important result of this treaty was that Chandragupta's fame spread far and wide and his empire was recognised as a great power in the western countries. The kings of Egypt and Syria sent ambassadors to the Mauryan Court


Chandragupta's birth shrouded in mystery

Chandragupta Maurya's origins were shrouded in mystery. Having been brought up by peacock tamers, he could be of low caste birth. According to other sources, Chandragupta Maurya was the son of a Nanda prince and a dasi called Mura. It is also possible that Chandragupta was of the Maurya tribe of Kshatriyas.


Mauryan Administration

Maurya empire was the first really large and powerful centralised state in India. It was very well governed, with tempered autocracy at the top and democracy at the city and village levels. Megasthenes, the Greek ambassador at the court of Chandragupta Maurya in Pataliputra, had expressed his admiration for the efficient administration of the empire. His book 'Indica' is a collection of comments of other Roman & Greek travelers, and Megasthenes wrote about the prosperity of the Mauryan cities.
He further reported that agriculture was healthy, water abundant and mineral wealth was in plenty. Speaking of the general prosperity, Megasthenes wrote, "the Indians, dressed in bright and rich colors, they liberally used ornaments and gems." He also spoke of the division of society according to occupation and the large number of religious sects and foreigners in the empire.

Chandragupta Maurya's son Bindusara became the new Mauryan Emperor by inheriting an empire including the Hindukush, Narmada, Vindhyas, Mysore, Bihar, Bengal, Orissa, Assam, Baluchistan & Afghanistan.


Copyright : IndHistory.com
번역 : 김태훈


선언하다, 빈틈없는, 조약, 파견하다, 궁정, 베일에 쌓인, 공작새 조련사, 조절된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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