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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4일 화요일

사랑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한 시.. After a While - Veronica A. Shoffstall.

많은 사람들이 사랑으로부터 즐거워하고 슬퍼한다.

사랑은 우리네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지만,

한 편으로는 깊은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시인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답을 던져주고 있다.



After a While

Veronica a. Shoffstall

After a while you learn
The subtle difference between
Holding a hand and chaining a soul
And you learn that love doesn't mean learning....
And you begin to learn
That kisses aren't promises
And you begin to accept your defeats
With your head up and your eyes ahead
With the grace of a woman
Not the grief of a child....
After a while you learn
That even sunshine burns if you get too much
So you plant your own garden
And decorate your own soul
Instead of waiting
For someone to bring you flowers....
And you learn and you learn
With every goodbye you learn.


얼마 후면 너는
손을 잡는 것과 영혼을 묶는 것의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고
입맞춤을 계약이 아니며
선물은 약속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머리를 쳐들고 앞을 똑바로 보며
소녀의 슬픔이 아니라
여인의 기품으로
너의 패배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얼마 후면 너는 햇볕도 너무 쬐면
화상을 입는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꽃을 갖다 주길
기다리기보다는
너만의 정원을 만들어
네 영혼을 스스로 장식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한 번 이별할 때마다 너는
배우고 또 배우게 되리라.

짧지만 강한 여운이 남는 시 두 편


고찬규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와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은
서로를 서로이게 하는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
천 년을 천 년이라 생각지도 않고



Fairy Tale


Gloria Vanderbilt

There once was a child
Living every day
Expecting tomorrow
to be different from today.






시의 길이가 중요한가.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작가의 깊은 영혼일 것이다.

2012년 5월 7일 월요일

A.D.50 쿠싼왕조와 카니쉬카스 왕(The Kushans and Kanishkas)

서기 50년 ~ 300년


서기 50년. 쿠싼 왕조의 설립.

쿠쌴 왕조(The Kushans)는 중국의 예우치(Yeuhchi) 부족의 유목민으로부터 파생되었다. 당시 예우치 부족은 다른 부족과 분쟁중이었는데, 결국 그 다툼에서 패배해서 중국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로 내려와 박트리아(Bactria), 파리따(Paritha), 그리고 아프가니스탄(Afghanista)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5개의 분파로 나눠졌다. 그리고 그 중 코우엘 초우강(Kouel Chougang) 파 (후의 쿠산왕조)가 가장 강성했다. 쿠잘라 휘하에 있던 쿠싼 부족은 파리따인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키-핀(Ki-pin)과 카불(Kabul)지역을 차지하였으며 당시 인도 국경지역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쿠싼 왕조의 첫 번째 왕은 쿠잘라(Kujala) - 카드피시스(Kadphises)라고 알려진 - 였다. 그는 위대한 전사였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위마 카드피시스(Wima Kadphises)(카드피시스 2세)는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점령하였고, 그 과정에서 북서부의 사카 사트렙(Saka Satrap) 왕국을 무너뜨렸다. 지금의 펀잡(Punjab)과 신드(Sind) 지역이 그가 통치하던 지역이다.

쿠싼 왕조의 영토


서기 120년. 카니쉬카의 집권

카니쉬카는 쿠샨 왕조의 왕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왕이다. 그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아무튼 그는 서기 120년 왕권을 잡았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당시 아프가니스탄, 신드, 펀잡과 전(前) 파리딴의 일부, 그리고 박트리안 왕국에 이르는 영토가 그의 땅이었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북서부인도와 카쉬미르, 갠지스 계곡 지방으로 영토를 넓혀갔다. 더불어 타쉬칸드(Tashkand), 코탄(Khotan), 야크한드(Yarkhand)라고 불리는 중국의 세 지역 또한 정복하였다. 이렇게 거대한 영토를 다스린 왕은 쿠싼 왕조에서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푸루쉬뿌라(Purushpura)(지금의 파키스탄-Peshawar지역)와 서부 우따르 프라데쉬(Uttar Pradesh)의 마뚜라(Mathura)에 두 개의 수도를 건설함으로써 그가 위대한 왕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카니쉬카스 왕, 그 후 쿠싼의 몰락

카니쉬카 왕의 바로 다음 왕은 바쉬스카(Vashiska)이다. 그리고 그 다음 왕은 후비쉬카(Huvishka)이다. 이러한 왕위계승 과정을 거치면서 마뚜라(Mathura)지역은 쿠싼 왕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후비쉬카 왕의 집권당시 수많은 기념비들이 세워졌다. 쿠싼 왕조의 마지막으로 위대한 왕은 바수데브 1세(Vasudev 1)이었다.
그 후 쿠싼 왕조는 북서부 지역의 페르시아-사싸니아인(Sassanians)들과 북쪽의 굽타인(Guptas)들에 의해 무너졌다. 쿠싼 왕조의 붕괴 시키는 남쪽의 사타바한 왕국(Satavahans)의 붕괴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쿠싼 왕조의 불교

카니쉬카왕은 집권 기간 중간 쯤에 불교를 수용했다. 그는 불교 신자가 되기 전까지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불교 신자가 된 이후, 불교 전파에 힘썼다. 당시 새로 생겨난 마하야나(Mahayana)라는 종교는 불교의 새로운 형태로써, 불교와 똑같이 부처를 숭배하는 종교이다. 당시 많은 낡은 수도원들이 수리되었고, 새로운 많은 사원들이 생겨났다.


쿠싼 왕조의 예술, 과학, 그리고 문학

카니쉬카 왕은 예술과 문학을 사랑했다. 당시 신 간다라(Gandhara) 예술 풍조가 생겨났으며, 그리스-로마 스타일로 아름답게 꾸며진 부처 형상이 그려졌다. 이 때의 부처 형상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우아한 몸매와 곱슬거리는 머리로 묘사되었다.

카니쉬카 왕의 궁전은 아쉬바고샤(Ashvaghosha), 바수미트라(Vasumitra), 나가리우나(Nagariuna), 차라카(Charaka) 등과 같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장식되었다. 아쉬바고샤는 위대한 시인이자 음악가였으며, 부처의 일생을 기록한 부다차리따(Buddhacharita)라는 책을 썼다. 차라카는 위대한 의사였는데, 그는 아유베르다 의술에 대해 저술한 차락 삼히따(Charak Samhita)라는 책을 썼다.




(원문)
[AD 50 - 300]
AD 50: Establishment of Kushans

The Kushans were a branch of the nomadic Yeuhchi tribe of China. The Yeuhchi tribe was in conflict with another tribe and so was forced to leave China. They came to Central Asia and then spread to Bactria, Paritha and Afghanistan. Gradually they were divided into five branches. One of these branches -- Kouel Chougang (Kushans) -- was superior to all. The Kushans under Kujala attacked the Parithans, took possessions of Ki-pin and Kabul and became the complete master of the Indian borderland.

Kujala became the first king of the Kushans and was known as Kadphises I. He was a great warrior. He was succeeded by his son Wima Kadphises known as Kadphises II. He conquered the north-western region of India. He defeated Saka Satraps in the north-west. Punjab and Sind were his dominions.


AD 120: Reign of Kanishka

Kanishka was the most famous of the Kushan kings. It is not known how he became the king but he ascended the throne in AD 120. When Kanishka ascended the throne, his empire consisted of Afghanistan, Sind, Punjab and portions of the former Parithan and Bactrian kingdoms. His empire extended from the north-west and Kashmir, over most of the Gangetic valley. He annexed three provinces of the Chinese empire, namely, Tashkand, Khotan and Yarkhand. He was the only king who ruled over these territories. He had two capitals at Purushpura (Peshawar now in Pakistan) and at Mathura in west Uttar Pradesh. Kanishka proved that he was a great conqueror.


Successors of Kanishka

Kanishka's immediate successor was Vashiska who was then succeeded by Huvishka. Mathura became the centre of Kushans. Many monuments were erected during Huvishka's reign. The last great king of Kushans was Vasudev I. The Kushans were overthrown by the Sassanians of Persia in the north-west and the Guptas in the north. The rule of Kushans ended almost at the same time as that of the Satavahans in the south.

Buddhism during the Kushans

Kanishka embraced Buddhism towards the middle of his reign. He is said to have been Zoroastrian before he became Buddhist. He spent his resources in spreading Buddhism. Mahayana was the new form of Buddhism that was followed during this period where the Buddha was worshipped as God. Old monasteries were repaired and many new ones were built.


Art, Science and Literature

Kanishka was a great patron of art and literature. A new form of art Gandhara Art was developed. Beautiful images of Buddha were developed in a Greek-Roman style. These images were carved in a realistic way, with graceful bodies and curly hair.

Kanishka's court was adorned by many scholars like Ashvaghosha, Vasumitra, Nagarjuna and Charaka. Ashvaghosha was a great poet and a master of music. He wrote Buddhacharita, a biography of the Buddha. Charak was a great physician and he wrote a book Charak Samhita, which is based on the Ayurvedic system of medicine.



Copyright : Indhistory.com
번역 : 김태훈



※ 쿠싼왕조 연표 ※
89-105 AD
  Kushan king repulsed by the Chinese General Pan Chao
148-170AD
  An-Shih-Kao translates a work by Kanishka's Chaplain
152 AD
  China loses Khotan
230 AD  
  The Yueh chi king Vasudeva sends an embassy to China
276-293AD
  Sassanian conquest of parts of North-West India



국경지역, 지배권(주권), 왕위에 오르다, 부가하다/(영토등을)합병하다, 뒤집어 엎어지다, 포용하다/수용하다, 수도원, 후원자, 우아한, 장식되다/꾸며지다.

2012년 4월 18일 수요일

B.C.30. 사트바하나 왕조의 부상(Rise of the Satvahana Dynasty)(영어+번역)

 사트바하나(Satvahana) 왕국


안드라스의 사트바하나 왕국 건설
마우리아 왕국이 몰락하고 사트바하나(Satvahanas)는 데칸(Deccan)지방에 새로운 왕국을 새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안드라스(Andhras)라고도 알려진다. 그들은 처음에 고다바리(Godavari)기슭의 마하라쉬트라(Maharashtra)에서 힘을 모았다. 사트바하나의 시조는 시무카(Simuka)였지만, 사트바한 왕국을 번성시킨 왕은 사타카르니 1세(Satakarni 1) 이었다. 기원전 30~40년쯤 부터 서기 300년 정도 까지 사트바하나 왕국은 인도지역을 다스렸다.

사타카르니 1세는 당시 강성했던 마라띠(Marathi) 왕국의 우두머리와 동맹을 맺고, 말의 목을 자르는 아쉬바메다스(ashvamedhas)라는 의식을 통해 그의 권력을 사방에 알렸다. 그가 죽은 후, 시띠안(Scythian)족의 침략과 함께 사트바하나 왕국은 점점 몰락하게 된다.






서기 80-104년. 가우타미뿌뜨라(Gautamiputra) 왕의 집권

사트바하나 왕국 영토
가우타미뿌뜨라 사타카르나(Gautamiputra Satakarni)는 사트바하나 왕조의 유명한 왕 중에 하나이다. 그는 사카스(Sakas)(Sycthians)과 야바나스(그리스), 그리고 파라바스(Parithans)를 물리쳤다. 그는 당시 영토를 남쪽의 바나바시(Banavasi)부터 마하라쉬트라(Maharashtra), 콘칸(Konkan), 사우라쉬트라(Saurashtra), 말와(Malwa),를 거쳐 서쪽의 라자스탄(Rajasthan),과 비다르바(Vidharbha).까지 확장했었다. 그의 아들, 바시스티뿌뜨라(Vasishtiputra)는 고다바리 기슭의 파이싼(Paithan) 지역을 다스렸다.

바짜얀티(북쪽 깐나라지방)과 암라바띠(군투르 지역), 이 두 도시는 사트바하나 왕조의 가장 큰 도시들이었다. 가우타미뿌뜨라 이후의 왕들은, 많은 영토를 외세에 빼앗겼지만, 스리 야즈나 사타카르니(Sri Yajna Satakarni)왕(사트바하나 왕조의 위대했던 마지막 왕)이 다시 집권을 하면서 사트바하나 왕국의 힘은 재정비됐다. 그 이후 왕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몇몇 학자들은 사트바하나 왕국에는 총 19명의 왕들이 있었고, 그들이 300년동안 지배를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학자들은 30명의 왕들이 456년간 지배를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사트바하나 왕조는 3세기 중간에 와서 붕괴가 되고 만다.(확실한 것은 서기 220년 이후라는 것이다.) 왕조 붕괴 후 왕국은 많은 주들로 쪼개지게 되고, 아브히라스, 추투스, 아크쉬바쿠스, 팔라바스 등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다음은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에서 사트바하나 왕조에 대해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행정

사트바하나 왕국은 아하라스(aharas)라고 불리는 지역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트야(amatya) 혹은 지역 장관에 의해 다스려졌다. 사트바하나에는 거대한 군사 조직이 있었다. 여자들은 사회 생활에서 남자보다 뛰어났으며, 재산을 소유하고 각종 집회에 참여하였다.


종교

사트바하나의 지배자들은 브라만(Brahmins)이라고 알려진다. 그들은 크리쉬나(Krishna), 바수데바(Vasudeva), 그리고 다른 바쉬나바(Vaishnava)의 신들을 숭배했다. 불교 또한 번창하였었는데, 당시 지배자들은 브라만과 불교 수도승들을 위해 땅을 기부했었다.


건축과 예술

많은 불교 기도/수도원들은 바위조각으로 치장돼있었다. 마하라쉬트라 지방의 칼레(Karle)에 가면 가장 유명한 기도원중의 하나를 볼 수가 있다. 사트바하나 왕조때는 책이나 화폐를 주조할 때, 산스크리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프라틱(Pratik)을 사용했었다.


사트바하나 왕국 동전

사트바하나 왕국 조각




(원문)

The Satvahana Dynasty

After the decline of the Mauryan empire the Satvahanas established their kingdom in the Deccan. They were also known as Andhras. They first rose to power in present Maharashtra on the banks of the Godavari. The founder of the Satvahanas was Simuka. But the man who raised it to eminence was Satakarni I. The Satvahana dynasty began its rule in about 40 or 30 BC, and continued until the 3rd century AD.

Satakarni I allied with powerful Marathi chieftain and signalled his accession to power by performing ashvamedhas (horse-sacrifice). After his death, the Satvahana power seemed to have been submerged beneath a wave of Scythian invasion.


AD 80-104: Reign of Gautamiputra

Gautamiputra Satakarni was the famous king during the Satvahana dynasty. He defeated the Sakas (Scythians), Yavanas (Greeks) and Pahlavas (Parithans). His empire extended upto Banavasi in the south, and included Maharashtra, Konkan, Saurashtra, Malwa, west Rajasthan and Vidharbha. His son, Vasishtiputra, ruled at Paithan on the banks of Godavari.

Two other cities, Vaijayanti (in North Kanara) and Amravati (in the Guntur district), attained eminence during the Satvahana period. Kings succeeding Gautamiputra lost many of their territories. But the power of Satvahanas revived under Sri Yajna Satakarni, who was the last great king. After him, the empire began to decline.

Some scholars say the there were 19 kings of this dynasty which ruled for 300 years, while others say there were 30 kings who ruled for 456 years. The dynasty came to an end about the middle of the third century AD. (after AD 220). Their empire broke up into small states ruled by the Abhiras, Chutus, Ikshvakus, Pallavas.



Extract from the book A History of India for Children


Administration

The Satvahana empire was divided into provinces called aharas, each under an amatya or minister. They had a large army. Women were prominent in social life, owned property and took part in assemblies.

Religion

The Satvahana rulers were said to be Brahmins. They worshiped Krishna, Vasudeva and other Vaishnava gods. But Buddhism also flourished. They gifted land to Brahmins and Buddhist monks.

Architecture and art

Many Buddhist chaityas (prayer halls) and viharas (monasteries) were carved out of solid rocks. The most famous chaitya is at Karle, in Maharashtra. The Satvahanas used Pratik, a form of Sanskrit, for their inscription and books.


Copyright : IndHistory.com
번역 : 김태훈


고위/최고, 우두머리, 접근, 가라앉다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B.C. 180 마우리아 왕조의 몰락과 숭가 왕조의 등장(Fall of the Mauryas & Rise of the Sungas)(영어+번역)

마우리아 왕조의 몰락

아쇼카 왕은 37년동안 마우리아 왕국을 통치하다가 기원전 232년에 죽었다. 그는 전쟁을 포기하고 왕국내에 평화를 전파하는 데 힘썼었다. 아쇼카가 죽은 후 7명(혹자는 10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의 왕이 50년간 마우리아 왕국을 다스렸다. 그러다가 결국 마우리아 왕국은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왕국의 몰락을 두고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아쇼카왕 지배 당시 전쟁을 지양했던 정책이 군대를 약하게 만들었고, 결국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며, 또 한쪽에서는 아쇼카 왕이 죽은 이후 왕들이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우리아 왕국 시민들의 생활
(Roshan Dalal의 "A History of India for Children"에서 참조)

마우리아 왕조때 많은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그들은 쌀, 밀가루, 보리, 면, 야채 등을 재배했다. 그리고 이외의 사람들은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마우리아 전기 때 활발하게 활동했고, 각기 다른분야에 있어 매우 전문적이었다. 예를 들면 직물, 나무, 상아 장식물, 또는 향수, 질좋은 돌을 이용한 보석세공, 철/구리 세공품, 빛나는 검은색 주전자 등이 그들이 만들었던 물건들이다. 각종 거래꾼과 상인들은 땅/바다 가릴 것 없이 왕성하게 물건들을 팔며 다녔다. 군인들은 왕국을 지켰으며 수상과 공무원들은 왕을 보좌했다. 철학자와 종교 관련 종사자들은 왕국을 돌아다니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 그리고 삶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우리아 왕조의 기둥조각
마우리아 왕조의 사람 얼굴 조각



숭가(Sungas) 왕조

마우리아 왕조의 마지막 왕은 브리따드라따(Brithadratha)였다. 그는 기원전 185년, 당시 최고사령관이었던 푸쉬야미트라 숭가(Pushyamitra Sunga)에게 죽음을 당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몰락과 함께 인도는 정치적 결합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푸쉬야미트라 숭가는 마가다(Magadha)와 주변 지역의 통치자로 군림하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숭가가 새로운 왕국을 새우면서 라즈푸타나(Rajputana), 말와(Malwa), 펀잡(Punjab) 등의 인도의 북서부지역은 외국의 왕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대신 숭가는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나르마다(Narmada)지역까지 지배하게 되었고, 자란다르(Jalandhar)와 시아코트(Siakot)(펀잡 내 지역)등의 북서부 지역도 점령하여 지배하게 된다.

푸쉬야미트라 숭가는 기원전 187년부터 151년까지 36년을 지배한 후 죽었다. 그의 왕위를 이은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이었던 아그니미트라(Agnimitra). 이 왕자는 인도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인 칼리다사(Kalidasa)의 연극에 등장하는 영웅이기도 하다.
아그니미트라는 비디사(Vidisa)와 동부 말와(Malwa)지역의 신 베스나가르(Modern Besnagar)에서 새로운 궁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질없게도 숭가(Sungas) 왕조의 힘은 결국 약해졌으며 숭가 왕조때 총 10명의 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숭가 왕국 시대의 인도 정세



칸바(Kanva) 왕조(기원전 75년 ~ 기원전 30년)


기원전 75년, 숭가 왕조의 마지막 왕은 칸바 왕조의 바수데바(Vasudeva)에게 밀려나게 된다. 바수데바는 숭가 왕조로 하여금 그들이 전에 지배하던 지역의 변두리에 대한 모호한 통치권을 보장해주었다.(아무튼 칸바와 숭가는 공존했던 셈이다 - 번역자 주) 그리고 마가다(Magadha)에서 4명의 왕들이 차례로 지배를 하게 된다.
기원전 30년, 서구 세력들이 몰아닥치면서 칸바스 왕조와 숭가 왕조가 모조리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동부 말와(Malwa)지역은 새로운 서구 지배자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원문)
Fall of Mauryas

Emperor Ashoka ruled for 37 years. He died in 232 BC. During his reign he gave up war and preached peace in the kingdom. Seven kings (some say 10) followed Ashoka within a period of 50 years. The Mauryan empire was breaking up. There are different opinions about the fall of the kingdom. Some say that since the later part of Ashoka's reign was devoid of wars, the military were inactive and this weakened them. Others say after Ashoka there were no strong kings to rule such a vast empire.

Life of People in Mauryan Empire

Extract from "A History of India for Children" by Roshan Dalal:

Many people were agriculturists. They grew rice, wheat, barley, pulses, cotton and vegetables. Others were artisans. They specialised in different crafts, as in the earlier period. Textiles, wooden, and ivory objects, perfumes, jewellery from semi-precious stones, items of iron and copper and the shining black pottery described earlier, were among the things they made. Traders and merchants carried goods to far-off places by land and sea. Soldiers defended the kingdom. Ministers and officials helped the king. Philosophers and religious people wandered through the kingdom in search of the truth about life and death, and why life existed.



Sungas Dynasty

The last ruler of the Mauryan dynasty was Brithadratha. He was killed by his own commander-in-chief Pushyamitra Sunga in 185 BC.

With the fall of Mauryas, India lost its political unity. Pushyamitra Sunga became the ruler of the Magadha and neighbouring territories. The north-western regions comprising Rajputana, Malwa and Punjab passed into the hands of the foreign rulers. The kingdom of Pushyamitra was extended upto Narmada in the south, and controlled Jalandhar and Sialkot in the Punjab in the north-western regions.

Pushyamitra died after ruling for 36 years (187-151 BC). He was succeeded by son Agnimitra. This prince is the hero of a famous drama by India's greatest playwright, Kalidasa. Agnimitra used to hold his court in the city of Vidisa, modern Besnagar in Eastern Malwa. The power of the Sungas gradually weakened. It is said that there were ten Sunga kings.


Kanva Dynasty (75BC - 30BC)

The last ruler of the Sunga dynasty was overthrown by Vasudeva of the Kanva dynasty in 75 BC. The Kanva ruler allowed the kings of the Sunga dynasty to continue to rule in obscurity in a corner of their former dominions. Magadha was ruled by four Kanva rulers. In 30 BC, the southern power swept away both the Kanvas and Sungas and the province of Eastern Malwa was absorbed within the dominions of the conqueror.


Copyright : Indhistory.com
번역 : 김태훈


~가 결여된, 보리, 기술, 상아, 최고사령관, 통치권(관할)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B.C. 272. 아쇼카 왕(Ashoka's Reign)(영어+번역)

 기원전 273년 ~ 232년

아쇼카(Ashoka)

아쇼카(Ashoka)는 빈두사라(Bindusara)왕의 가장 촉망받는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용감한 전사이기도 했다. 아쇼카는 마우리아 왕조의 모든 왕들중에 제일 유명하며, 인도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들 중 한명이다. 그의 아버지, 빈두사라왕이 통치하더너 시절, 아쇼카는 우짜인(Ujjain)과 타씰라(Taxila) 지방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의 형들은 유망했던 아쇼카가 왕을 이어받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지만, 결국 아쇼카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마우리아 왕국을 극남지방과 남동부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 인도 지역 및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하게 된다.


기원전 261년, 칼링가(Kalinga) 전쟁

아쇼카왕의 상징, 4두사자상

아쇼카는 칼링가 지역을 지배하는데 성공했지만, 그에 대해서 엄청난 희생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거의 10만명이 죽었고 15만명이 부상당했으며, 수천명이 포로로 잡혀 칼링가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영토 확장과 정복 과정에서 많은 살육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아쇼카는 많은 고뇌와 심정의 변화를 느꼈다. 그리고 이것은 아쇼카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그는 전쟁을 지양하고 부처의 가르침(사랑)과 아힘사(Ahimsa)(비폭력)(이것은 간디의 핵심 사상 이기도 하다 - 번역자 주)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은 그에게 더이상 폭력과 증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짐승을 사냥하거나 도살하는 것 또한 중단했고, 매우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의 변화 아래서, 불교는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중앙아시아, 버마 등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불교의 원활한 포교를 위해서, 사람이 많이 볼 수 있는 바위나 건물 기둥에 불교 경전을 새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 후 2000년간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고 있다. 이 때 당시 새겨진 바위나 기둥들은 지금도 인도에서 발견이 된다. 아쇼카는 그의 이러한 사상에 대해 다르마(Dharma)라는 이름을 지었다.

아쇼카는 기원전 232년 죽었다. 사르나쓰(Sarnath)에 있는 아쇼카의 기둥 머리글자는 인도의 국가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기둥에 새겨져 있던 "다르마 차크라(Dharma Chakra)"는 인도의 국기에도 들어가 있다.

가운데 있는 차크라 문양이 아쇼카 왕의
불교사상을 의미한다. 원래 삼색국기였다가
간디의 주장으로 문양이 새겨짐





(원문)
273 BC: Ashoka coronated as Mauryan king

[273 BC - 232 BC]
Ashoka, the most trusted son of Bindusara and the grandson of Chandragupta Maurya, was a brave soldier. He was the most famous of the Mauryan kings and was one of the greatest rulers of India. During his father's reign, he was the governor of Ujjain and Taxila. Having sidelined all claims to the throne from his brothers, Ashoka was coronated as an emperor. Ashoka extended the Maurya Empire to the whole of India except the deep south and the south-east, reaching out even into Central Asia.


261 BC: The Kalinga War

Ashoka succeeded in conquering Kalinga after a bloody war in which 100,000 men were killed, 150,000 injured and thousands were captured and retained as slaves. The sight of the slaughter involved in his conquest deeply distressed Ashoka and deeply affected his mind. This was a turning point in his life. He renounced war and sought peace in Buddha's preachings of love and ahimsa (non-violence). The war also developed in him a hatred for all kinds of violence. So he gave up hunting and slaughtering of animals. He became a strict vegetarian.


Under his reign Buddhism spread to Syria, Egypt, Macedonia, Central Asia, Burma. For propagation of Buddhism, he started inscribing edicts on rocks and pillars at places where people could easily read them. These pillars and rocks are still found in India, spreading their message of love and peace for the last two thousand years. To his ideas he gave the name Dharma. Ashoka died in 232 BC. The capital of Ashoka pillar at Sarnath is adopted by India as its national emblem. The "Dharma Chakra" on the Ashoka Pillar adorns our National Flag.


Copyright : indhistory.com
번역 : 김태훈


훼방을 놓다, 보류하다, 도살, 비탄하게하다, 증오, 포교, 새기다, 칙령

B.C.298 찬드라굽타의 아들, 빈두사라의 집권(Bindusara Coronated)(영어+번역)

기원전 298년 ~ 273년

Bandusara
찬드라굽타는 25년간의 통치 이후 그의 아들 빈두사라(Bindusara)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기 자신은 자이나교의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빈두사라는 힌두쿠시(Hindukush), 나마다(Narmada), 빈디야스(Vindhyas), 마이소르(Mysore), 비하르(Bihar), 벵갈(Bengal), 오리싸(Orissa), 아쌈(Assam), 발루치스탄(Baluchistan), 그리고 아프가니스탄(Agrhanistan)에 이르는 마우리아 왕조의 영토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는 그리스 작가들로부터 '적군 학살자'라는 뜻의 아미트라가타(Amitraghata)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빈두사라의 왕국

빈두사라는 집권 이후 남부 마이소르까지 영토를 확장하게된다. 그는 16개의 주를 정복해나가며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나갔다. 그 때 당시 마우리아 왕조의 영토는 인도에서 칼링가(Kalinga) - (현대의 오리싸지역)와 남부의 드라비디안(Dravidian) 왕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이르렀다. 콜라스(Cholas), 판디야스(Pandyas), 체라스(Cheras) 시절, 드라비디안 왕국은 마우리아 왕국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빈두사라는 굳이 드라비디안을 정복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그러나 왕이 바뀌고 칼링가(Kalinga)가 드라비디안 왕국을 다스리게 되면서 마우리아 왕조에게 더이상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게 되고, 빈두사라왕의 아들, 아쇼카가 집권하면서 두 왕국은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된다.


반두사라 집권 당시 마우리아 영토



빈두사라 집권당시의 행정

빈두사라는 셀루서스 니카토르(Selucus Nicator)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주기적으로 외교 사절단과 선물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는 셀루서스의 아버지에 의해 세워진 서부 헬레닉(Hellenic West)지역과도 친선을 유지했다. 당시 빈두사라의 궁정에는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온 각종 사절단들이 머물렀다. 그리고 빈두사라는 자이나교보다는 아이비카교(Aiivika)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원문)
298 BC: Bindusara becomes the new king of Mauryan Empire

[298 BC - 273 BC]
After ruling for about twenty five years, Chandragupta left his throne to his son Bindusara and became a Jain ascetic. Bindusara inherited an empire including the Hindukush, Narmada, Vindhyas, Mysore, Bihar, Bengal, Orissa, Assam, Baluchistan & Afghanistan. He was called Amitraghata which means "slayer of foes" by Greek writers.

Bindusara's Empire

Bindusara extended his empire further as far as south Mysore. He conquered sixteen states and extended the empire from sea to sea. The empire included the whole of India except the region of Kalinga (modern Orissa) and the Dravidian kingdoms of the south. The Dravidians kingdoms of the Cholas, Pandyas and Cheras were very friendly with the Mauryan empire and so the king felt no need to conquer them. However, Kalinga was not friendly with the Mauryans and so a war was fought between the people of Kalinga and Mauryans led by Bindusara's son Ashoka.


Administration during Bindusara's Reign

Bindusara maintained good relations with Selucus Nicator and the emperors regularly exchanged ambassadors and presents. He also maintained the friendly relations with the Hellenic West established by his father. Ambassadors from Syria and Egypt lived at Bindusara's court. He preferred the Ajivika philosophy rather than Ja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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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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